오늘은 한국 드라마의 제작 방식 변화, 시즌제 도입 배경, 플랫폼/산업적 측면 등을 중심으로 알아볼 예정입니다.
한국 드라마는 오랫동안 16부작 혹은 20부작 단편 구조가 중심이었습니다. 시작과 결말이 명확하고, 짧은 시간 안에 몰입감 있게 스토리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한국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패턴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드라마는 눈에 띄게 시즌제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한 편짜리 완결형’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의 기준에 맞춘 포맷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죠.
이 변화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전환입니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과 함께, 이제 한국 드라마는 더 넓은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시즌제는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제작 방식입니다.
1.시즌제 드라마, 왜 지금 한국에서 주목받는가?
기존 한국 드라마는 보통 방송사 편성 중심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방송 일정을 고려해 스토리를 빠르게 전개해야 했고, 제한된 회차 안에 갈등과 해소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후반부 질주’, ‘마무리 급전개’라는 평가가 따라붙기도 했습니다.
반면 시즌제 구조는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습니다. 한 시즌에 전체 이야기를 다 넣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야기의 깊이와 서사적 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죠.
한국에서 시즌제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의 영향이 큽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미국 드라마처럼 시즌제 제작에 익숙한 플랫폼이며, 시청자 역시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경험에 익숙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 콘텐츠도 자연스럽게 시즌제를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D.P.』: 시즌 1과 시즌 2 모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군대 내 부조리와 병사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다룸
『스위트홈』: 시즌 2로 이어지며, 한국형 좀비·괴수물의 가능성을 넓힘
『경이로운 소문』: OCN을 시작으로 시즌 2까지 방영되며 한국형 히어로물로 자리매김
『마이네임』, 『지금 우리 학교는』, 『택배기사』 등도 시즌 확장을 전제로 한 기획 구조
이제 한국 드라마의 시즌제는 일시적 실험이 아닌, 장기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2.시즌제가 콘텐츠에 주는 긍정적 변화
시즌제가 한국 콘텐츠에 도입되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스토리텔링의 유연성입니다.
완결형 구조에서는 모든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고, 짧은 시간에 캐릭터가 급격히 변화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즌제는 이야기의 시간적 확장을 가능하게 하며, 인물의 감정선과 배경을 더 깊이 있게 풀어낼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D.P.』 시즌 1은 주요 인물들의 배경과 갈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시즌 2에서는 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제도적 문제와 조직적 폭력을 더 심도 있게 다루는 서사 확장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시즌제는 세계관 중심 콘텐츠 기획에 유리합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세계관 내 다른 사건이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 시즌을 기획하거나 외전 형식의 시즌을 만들 수 있어 IP 확장에도 유리합니다. 이는 마블 시리즈나 ‘왕좌의 게임’ 등 글로벌 콘텐츠에서 이미 성공한 전략입니다.
제작 측면에서도 시즌제는 장점이 있습니다.
초기에 기획된 전체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청자 반응을 보면서 시즌을 조절할 수 있고
안정적인 제작 사이클을 구성하면서 제작비 분산, 인력 운용 효율성까지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즌제 도입은 창작자에게는 창의적인 기획의 폭을, 시청자에게는 지속적인 기대와 몰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3.글로벌 플랫폼 시대, 시즌제가 필수가 되는 이유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은 시즌제 중심의 콘텐츠 구조를 기본값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시청자들은 시즌제 드라마에 익숙하며, ‘시즌마다 성장하는 스토리’와 ‘클리프행어(마지막에 다음 시즌을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 같은 서사 구조를 기대합니다.
따라서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즌제 포맷 도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또한 글로벌 플랫폼은 통상 한 시즌 공개 이후, 시청률 데이터,소셜 미디어 반응,시청 지속률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시즌 제작 여부를 빠르게 결정합니다. 이는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 중심의 방송 구조보다 훨씬 데이터 기반이고 시청자 중심적인 접근입니다. 이 구조에 익숙해진 한국 제작사들은 이제 기획 단계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세계관, 인물, 갈등 구조를 설계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특징이 시즌제 도입에 적합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장르물 (스릴러, 좀비, 수사극 등),IP 기반 웹툰 원작,강한 팬덤 형성 가능성,미완 결말 or 개방형 서사 구조
이러한 조건에 맞는 콘텐츠는 시즌제로 기획되었을 때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이제 한국 드라마는 단순히 ‘완성도 높은 한 편의 드라마’를 넘어서, 지속적인 세계관 구축과 장기적 시청자 관계 형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즌제는 이러한 방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포맷입니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시즌제에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단편형 구조의 아름다움과 완결형 드라마의 힘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드라마 산업이 시즌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콘텐츠의 질적 성장과 더불어,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기준에 한 걸음 더 다가섰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K-드라마의 다음 시즌,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시즌제는 이제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