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한민국의 장르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 소설계에 새로운 장르의 문을 열었던 『퇴마록』은 단순한 퇴마 이야기를 넘어서, 철학, 종교, 과학까지 아우르는 스케일 큰 세계관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글에서는 『퇴마록』이 가진 작품적 가치와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1.『퇴마록』이란 무엇인가: 장르의 한계를 넘은 한국형 퇴마 소설
『퇴마록』은 이우혁 작가가 1993년에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 국내 최초로 '퇴마'를 전문적으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초반에는 오컬트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났으나, 점차 이야기가 전개되며 동양과 서양의 종교, 철학, 과학 이론이 복합적으로 등장하는 철학소설로 진화한다.
주인공은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조사하는 퇴마사 '오강민'과 그의 동료들이다. 이들은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을 돌며 악령, 요괴, 괴이한 존재들과 맞서 싸운다. 단순한 유령 퇴치가 아닌, 인류의 어두운 역사와 심연 속 악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특히 『퇴마록』은 '퇴마행'이라는 개념을 통해 동양적 정서와 신비주의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한국적 퇴마 서사의 기준을 정립했다. 불교의 윤회, 천주교의 악마론, 과학적 패러다임 등이 등장해 다층적인 텍스트로 평가된다. 이처럼 다양한 세계관을 아우르는 복합적 구성은 기존 장르문학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2.시대를 풍미한 인기와 대중문화로의 확장
『퇴마록』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퇴마록 외전', '퇴마록 혼세편', '퇴마록 말세편', '퇴마록 스페셜' 등 다양한 시리즈가 출간되며 누적 판매 부수는 수백만 부를 기록했다. 당시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지만, 독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팬덤이 형성되며 퇴마록 세계관에 대한 열띤 분석과 토론이 이어졌다.
퇴마록의 영향력은 출판계를 넘어 다양한 매체로 확장되었다. 영화화(1998년 영화 《퇴마록》, 주연: 추상미, 주진모) 되었고, 게임, 만화, 오디오북 등으로도 제작되었다. 특히 퇴마록의 주요 등장인물인 '서린', '청현 스님', '루피노' 등의 캐릭터는 당시 독자들의 강한 사랑을 받으며 한국형 히어로물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퇴마록』은 학교 도서관이나 청소년 독서 목록에 꾸준히 오르며 10대들에게도 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단순한 호러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고민, 선과 악의 경계, 종교적 진리와 같은 철학적 주제를 품고 있어 학문적, 문학적 분석 대상으로도 가치가 높다.
3.『퇴마록』의 현재와 재조명: 한국 장르문학의 자부심
『퇴마록』은 2020년대에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나 웨이브, 티빙 등 OTT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국내외에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퇴마록』 역시 영상화 기대작 중 하나로 언급된다. 사실 『퇴마록』은 시리즈 구성상 시즌제로 제작하기 매우 유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각 에피소드가 독립적인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드라마나 웹툰화에 적합하다.
또한 최근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다크 판타지'와 '호러 미스터리' 장르가 각광받고 있는 흐름 속에서, 『퇴마록』은 시대를 앞서간 콘텐츠로 재조명되고 있다. 30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와 스토리 구조, 그리고 보편적인 인류적 고민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가 이우혁은 여전히 퇴마록 시리즈의 세계관을 이어가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독자들은 언제 다시 퇴마록의 후속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감을 품고 있다. 2023년을 기점으로 『퇴마록』의 웹툰화나 애니메이션화, 리메이크 소식이 꾸준히 들리는 것도 이 같은 관심의 연장선이다.
무엇보다 『퇴마록』은 ‘한국형 판타지’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서양의 오컬트나 일본의 요괴물에만 치중되던 기존 장르 문학의 흐름을 뒤바꾸며, 한국 고유의 정서와 세계관이 전 세계적인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퇴마록』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학이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독자들은 단지 유령 퇴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세계의 이면, 그리고 진정한 선과 악에 대한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우혁 작가가 『퇴마록』을 통해 던진 수많은 질문들—“악이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의 구원은 가능한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퇴마록』을 읽을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