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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기 전에 가봐야 할 오래된 책방 5곳: 전통과 고요의 공간

by 홍이나라 2025. 7. 18.

오래된 서점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책 한 권과 조용한 공간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유명 인스타 감성 서점도 좋지만, 오늘은 조금 더 오래되고 낡았지만 진한 흔적을 간직한, ‘시간이 멈춘 듯한 책방’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요즘은 많은 동네 책방들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20~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작은 책방들은 주변 개발과 독서 문화의 변화 속에서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그럼에도 묵묵히 존재감을 지키며 동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그런 공간들이 있다. 그 흔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오늘은 ‘사라지기 전에 가봐야 할 오래된 책방’ 5곳을 소개한다.

 

1.시간이 쌓여 있는 공간: 서울 종로구 ‘고서점 풍경’

서울 혜화동의 한 골목 안, 이화사거리 근처에 자리한 ‘고서점 풍경’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켜온 고서 전문 서점이다. 이곳은 대중적인 소설이나 신간보다는 절판된 철학서, 예술사 책, 고전문학 초판본 등이 주를 이룬다. 빽빽하게 쌓여 있는 책장과 낡은 나무 바닥, 주인장의 느긋한 다기 세트가 이곳만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한참 책을 뒤지다 보면, 언젠가 책방 주인이 "그 책, 뒤쪽 왼쪽 맨 아래에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해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공간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기억을 파는 곳이다. 이 책방은 SNS에서 자주 보이진 않지만, 오래된 책 냄새와 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2.골목길의 추억: 대구 남산동 ‘계명서림’

대구 남산동은 옛 골목이 잘 남아 있는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계명서림’은 지역 주민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책방이다. 1975년에 개업한 이곳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간판도, 내부 인테리어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아직도 장부에 손으로 매출을 기록하는 주인장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는 손님이 오면 조용히 인사만 건넬 뿐 굳이 말을 걸지 않는다. 이곳은 ‘사람과 책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가끔 지역 예술대학생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거나, 수험생이 고전소설을 사러 오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 바로 계명서림이다. 관광객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대구를 방문한다면 이 책방을 그냥 지나치긴 어려울 것이다.

 

3.책보다 공간이 말을 건네는 곳: 군산 ‘대왕서점’

전북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도시지만, ‘대왕서점’은 그 문화 속에서도 조용히 시간을 지켜온 공간이다. 1983년 개업 후 한 번도 문을 닫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입구부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군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 한 번쯤 이곳에서 참고서나 만화책을 샀던 기억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참고서 대신 에세이나 지역 출판물, 고전 시리즈 등이 주를 이룬다.
이 책방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공간 자체의 힘’에 있다. 낡은 나무 서가,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햇살, 책을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인 손님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최근에는 대왕서점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익숙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책과 함께 머물고 싶은 이들에게, 군산의 이 오래된 책방은 따뜻한 기억을 남겨줄 것이다.


이런 책방들은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이 가진 분위기, 책을 대하는 태도, 주인장의 철학, 그리고 책방이 동네와 맺은 관계들이 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든다.
오늘 소개한 책방들은 모두 SNS나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조용하고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어쩌면 이런 책방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 공간에 가서, 그 책을 집어 들고, 그 냄새를 맡고, 그 시간 속에 머문다면—그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 근처에도 그런 책방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쯤,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